2022년 부활절기 여섯번째 주일 설교 요약 및 Activity 안내
본문 요 21:15-19, 암송 요 21:22, 2022년5월22일
Text Jn 21:15-19, Recitation V Jn 21:22, May 22, 2022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예배를 통해 올려 드리는 모든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기쁘게 받으실 줄 믿습니다.
지난 주에는, 요 20:13-19 말씀을 통해서, 도마의 불신을 믿음으로 바꾸어 주시고,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 하시면서, 성령을 주신 것을 살펴 보면서, 우리도 주님께 받은 성령을 통해, 주님의 부활을 세상에 전할 수 있기를 다짐해 보았습니다. 이번 주에는 요 21:15-19 말씀을 통해서, 부활하신 주님을 세번이나 만나고도 아직도 죄책감에 빠져 있는 베드로를 회복시켜 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살펴보고 함께 은혜 나누기를 소망합니다.
1) 지난 몇 주에 걸쳐 우리는 부활의 주님을 만난 제자들이 믿음과 기쁨으로 반응하지 못했고, 주님께서 다양한 방법으로 그들의 믿음을 회복시켜 주신 것을 보았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에게는 평상시 불러 주시던 다정한 음성으로,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신적 기적을 베풀어 주심으로, 마가 다락방에 모여 있던 제자들에게는 손과 발을 보여 주시고 또 음식 교제를 하심으로, 그리고 도마에게는 직접 나타나 보여 주심으로 믿음도 회복해 주시고 또한 여러가지 아픔에서 회복시켜 주셨음을 보았습니다.
2) 그런데 특히 한 사람 시몬 베드로는 참 이상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여인들에게 주님의 무덤이 비어 있고 또 천사들로 부터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전해 들었을 때, 그는 즉시 달려가 무덤에 들어가 보고 세마포와 머리를 쌌던 수건이 놓여 있는 것을 보고 놀랍게 여겼다고 하며 (요 20:3-10), 또 예루살렘 어디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고 되어 있으며 (눅 24:34), 또한 마가의 다락방에서 열제자와 함께 (눅 24:36-49), 그리고 여드레를 지나서는 도마를 포함한 열한제자와 함께 또 다시 주님을 만났지만 (요 20:24-29), 그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씀이 없습니다. 그저 다른 제자들에 섞여 조용하게 있는 것 같은 그의 행보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3) 왜냐하면 그는 예수님의 공생애 3년동안 수제자로서의 자리를 항상 지켜 왔고, 중요한 때가 되면 항상 앞서 왔기 때문입니다. 물론 주님의 대속 사역의 마지막 행보 중에서는 베드로가 많은 실수를 했습니다. 가이샤라 빌립보에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16:16)”는 위대한 고백을 했지만, 주님께서 수난예고를 하시자,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하며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마16:22)”고 했고, 결국 주님께 사람의 일을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라 (마16:23)는 질책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변화산 상에서도 예수님의 모습이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형되사 모세와 엘리아와 말씀을 나누시자,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겠다고 상황에 맞지 않는 대응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시기 전날 밤,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하신 후 (마 26:17-30),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하게 될 것과, 다시 살아나셔서, 갈릴리로 먼저 가실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자 (마 26:310) 그 때, 베드로는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다(마 26:33)”고, “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겠다(요13:37)”고 그리고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다(눅 22:33)”고 예수님께 말했지만, 주님께로 부터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할 것이다 (마26:34) ”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잡히시자, 칼을 빼어 들고 저항했고 (요 18:10), 또 대제사장의 집 뜰에 까지 따라 들어갔던 베드로 (요 18:16)는 사람들이 그를 알아 보며, “너도 예수와 함께 있었다 (마26:69,71)” 고 “너도 그 도당이라 (마26:73)”고 하자,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마26:70)”고, “나는 예수를 알지 못한다 (마 26:72)”고, 그리고 심지어 저주하고 맹세까지 하면서 “나는 예수를 모른다 (마 26:74)”고 했고, 이때 닭이 울자,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 밖에 나가 심히 통곡을 했습니다.
4) 그렇게 여러가지 실수도 하고, 또 마지막에는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였기에, 부활 하신 예수님을 세번이나 만나고도, 그의 마음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갈릴리에 가서 주님을 기다리면서도, 깊은 죄책감으로 잠 못 이루더니, 그 밤에 갈릴리 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나갔지만, 밤새 허탕만 치던 중 (요 21:3) 날이 새어갈 무렵에 주님께서 그들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준비하신 조반을 먹이신 후, 베드로에게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요 21:15)?”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 21:16 agape,17 phileo)?”고 세번이나 물으시면서, 베드로가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아십니다 (요 21:15,16,17)”고 고백하게 하심으로 베드로의 Grieving을 도와 주셨는데, 그러나 이어서 세번이나 “내 양을 먹이라 (요 21:15,16,17)” 며, 그의 아픔을 오히려 사명으로 승화시켜 주셨습니다.
5) 오늘 본문을 통해서 몇가지 은혜 받기를 원하는데, 첫째, 부활의 주님을 세번이나 만나고도 회복하지 못한 베드로의 마음을 주님께서 회복시켜 주신 이야기를 통해서, 때때로 마음의 병은 한두번의 만남으로 쉽게 회복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치유자되시는 주님은 그런 베드로를 마침내 회복시켜 주시고 또 사명으로 연결시켜 주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아픔이라도 주님께만 나오면, 혹은 주님께서 찾아와 만나 주시면 회복될 줄로 믿는 바, 이런 주님을 만나는 은혜가 모든 분들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그렇게 회복시켜 주신 후, 그 아픔을 오히려 사명으로 연결시켜 주시는데, 그것은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는 통속적인 ending 이 아니라, 결국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만나 회복되어, 주님 주시는 진정한 소명을 발견하게 되면, 그 사명의 길을 가는데 따른 고난과 멸시와 천대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회복을 너머 그런 사명을 주시는데, 그럴 때 만이 상황을 뛰어넘는 기쁨과 환난을 이겨내는 믿음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 하옵기는 부활절기 여섯번째 주일을 맞아, 우리 모두에게도 부활의 주님께서 찾아 오셔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 성경도 깨닫게 해 주시고, 우리의 믿음과 기쁨을 회복시켜 주실 뿐 만 아니라, 우리의 깊은 상처 마저도 어루만져 주시고, 마침내 그 아픔마저 우리의 사명으로 승화 시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Activity questions and thought behind
Q1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가 부활의 예수님을 세번이나 만났지만, 여전히 마음 깊숙한 죄책감은 회복되지 않은 채, 갈릴리 호수가에서 예수님을 기다리며 밤을 지새다, ‘물고기나 잡으러 가겠다’고 말했을 때, 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이 질문을 통해서, 우리들도 성경 속의 베드로의 입장이 되어 보고, 또 베드로가 어떤 마음이었을지를 생각해 보고 베드로를 공감해 보고 이해해 보기를 소망합니다. 다양한 생각과 의견과 감정과 경험을 표현할 때 공감해 주시면서, 때때로 생각의 이유도 물어봄으로 그룹원들과 적극적 경청과 공감의 대화를 나누실 수 있으시기를 소망합니다)
Q2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상처입은 베드로의 마음을 치유하시는지 배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가 세번이나 교만하게,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다(마 26:33)”, “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겠다 (요13:37)”, 그리고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다(눅 22:33)”는 말들과, 또 세번이나 “나는 이 사람을 모른다”고 말한 배신의 상처를 지적하거나 나무라시지 않으시고, 예수님께서는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요 21:15)?”, “네가 나를 사랑 (agape) 하느냐 (요 21:16,17)?”, “네가 나를 사랑 (phileo) 하느냐 (요 21:16,17)?”고 세번 물어 주시고, 베드로로 하여금, “내가 모든 다른 사람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는 아십니다 (요21:15)”,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는 아십니다 (요21:16)”,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며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아십니다 (요21:17)”고 고백하게 하셨고, 또, 주님께서는 신뢰와 사랑을 담아, 그의 실패를 그의 사명과 부르심으로 승화시켜 주신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혹 우리들도 그렇게 상처입은 채 넘어져 있다면, 그래서 부활의 주님께서 우리에게 찾아 오셨다면,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어떻게 질문하시고 또 어떻게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 주실 지 생각해 보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마음의 상처와 트라우마는 그냥 덮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grieving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먼저, 깊은 고민과 상처들을 드러낼 수 있도록 도와 주고, 들어주고 이해해 주고 공감해 주는 과정을 통해서, 치료되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또한 궁극적으로는 그 아픔이 사명으로 까지 승화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질문을 통해서, 우리들이 실수하고 넘어졌을 때에라도, 예수님은 우리 마음을 치료해 주시는 분임을 믿고, 마음의 상처를 치료받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와야 하며, 그러한 아픔을 어떻게 사명으로 승화시켜 주시는지 주님의 뜻을 분별하고 또한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다양한 생각과 의견과 감정과 경험을 표현할 때 공감해 주시면서, 때때로 생각의 이유도 물어봄으로 그룹원들과 적극적 경청과 공감의 대화를 나누실 수 있으시기를 소망합니다)
Q3: 그런데, 혹 우리들의 형제 자매 중에 깊은 마음의 상처가 있어, 나에게 찾아온다면 어떻게 도와 줄 수 있을까요?
(마음의 상처와 아픔은 grieving 과정이 필요한데, 마음에 상처를 입은 분들이 마음의 상처를 밖으로 드러내도록 도와주고, 또 상대의 이야기를 비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들어주고 공감해 주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그 아픔이 사명으로까지 승화되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우리가 조심해야 하는 것은 공감해 주는 것과 편을 드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즉 상대방의 감정이나 생각을 공감해 주는 것은 상대방이 옳다고 인정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과의 관계의 문제가 있을 때에는, 특히 두 사람 사이의 심판자가 되려 하거나 또 두 사람의 사이에 끼어들어 해결자가 되려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결국 제3자로써 갈등관계에 있는 두 사람이 서로의 다름을 알고 인정하며, 서로 용납하고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 대신 해결해주거나 옳고 그름을 판정해 주는 역할을 할 경우 결국 문제 당사자끼리의 관계는 회복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한 이런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제3자로서 우리의 공감능력도 공감 언어도 배워야 하며, 또 Grieving 과정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며, 제3자로써 갈등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등 교육도 받아야 하기에 겸손히 배우는 자세로 임하되, 무엇보다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는 주님께서 모퉁이 돌이 되심을 명심하고, 두 사람 사이에 주님께서 도와 주시도록 기도하고 또 그런 기회를 만들어 제공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과정은 오래 걸릴 수 있는데, 특히 기도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바, 끝까지 두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자리에 서야 할 줄로 믿습니다. 다양한 생각과 의견과 감정과 경험을 표현할 때 공감해 주시면서, 때때로 생각의 이유도 물어봄으로 그룹원들과 적극적 경청과 공감의 대화를 나누실 수 있으시기를 소망합니다.)
Q4 혹 지금 상처와 아픔이 있습니까? 혹 있다면, 주님과 나누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혹 각자가 가지고 있는 상처가 있는지 물어 보는 질문입니다. 없기를 바라지만 만약 있을 경우 먼저 기도로 그 상처를 주님께 가져 가실 수 있도록 먼저 도와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주님께서 그 과정에 함께 해 줄 사람들도 예비해 주시는 바, 먼저 주님께 기도로 나아간 후, 전체 모임보다는, 필요하면 그룹 인도자께서 그분과 일대일로 만나는 자리를 가지고 들어 주시면서 공감과 이해와 적절하게 주님께 인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은 반드시 삶의 변화와 기쁨의 순종을 동반하며, 또한 치유와 회복이 있는 바, 부활의 주님과 동행하며 기쁨과 회복과 성장이 있는 한 주간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Prayer Note 기도 노트
( ) 하나님 아버지!
( ) 해 주심에
찬송과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 ) 한 죄를 깨닫게 해주심에 감사드리며,
저의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오니,
이제 ( )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옵소서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하여 ( ) 을 가르쳐 주심에 감사합니다.
( )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 ) 우리 주님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일 대표 기도 노트
( 이번주 대표 기도 내용과 잘 맞는 하나님의 성품 ) 하나님
( 한주간 우리 교회 전체적인 감사 기도 제목. )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은 (해 주시니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려(올려) 드립니다.)
( 성도 전체를 대표하여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기도. ) 한 죄를 용서해 주시고 이제 하나님 뜻대로 ( 용서받은 성도로서 어떻게 살지를 구하는 기도 ) 하며 살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특별히 오늘 (절기 혹은 특별한 Event ) 주일을 맞아 우리교회가
(. 교회의 사역을 위한 기도. ) 를 잘 감당하게 해 주십시오.
오늘 에배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 말씀을 위한 기도 ) 목사님께서 말씀 증거하실 때에 성령님 께서 힘을 더하셔서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게 도와 주시고 온 교회은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있도록 도와 주옵시며, 어린이 예배와 청소년 예배에도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안내, 찬양, 미디어, 교제 등 에배의 모든 순서를 맡은 에배 위원들의 헌신을 주님 받아 주옵시되, 오늘 주님의 에배에 초대 받고 예배에 참석한 모든 분들이 성령과 진리로 에배함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가 충만한 복된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 필요시 세계 선교를 위해.. 혹은 커뮤니티나 세상을 위한 중보기도.) 하게 해 주십시오.
( 오늘 주일에 합당한 예수님의 성품 )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일 대표기도에는 (1) 경배와 찬양 (2) 감사 (3) 회개 (4) 중보 (5) 간구의 5가지 기본 요소를 적절히 넣으시되, 개인이 아니라 전체 성도들을 대표하는 기도이기에 모든 성도들의 감사의 마음이 반영되고 용서받고자 하는 마음이 보편적으로 언급되어야 하며 간구의 내용이 주관적이지 않고 객관적이고 보편적이어야 합니다. 위의 Form 을 참조하셔서 대표기도를 준비하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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